박찬욱 감독이 각본과 제작에 참여해 화제가 되었던 이경미 감독의 작품 미스 홍당무입니다. 2008년 개봉작으로 개봉 당시 관람하고 뭔가 머리가 띵했던 영화였습니다. 주인공 캐릭터가 워낙 특이해서 2022년인 지금까지도 이런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영화는 더 이상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경미 감독이 자주 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도 녹아있지만 남녀관계없이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였습니다. 장르는 코미디로 보다 보면 일단 웃겨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재미있게 보실 수 있는 영화입니다.
"내가 내가 아니었으면 다들 이렇게 나한테 안 했을 거면서 내가 나니까 다들 일부러 나만 무시하고!"
이 대사가 영화 내내 주인공 양미숙의 심리를 관통하는 하나의 명대사인 것 같습니다. 수시로 얼굴이 빨개지는 못생긴 여성 양미숙은 일상의 불합리함을 일상적으로 겪으며 평생을 살아온 인물입니다. 학생들에게나 동료들에게나 비호감 인물로 취급받던 그녀는 동료 교사 서 선생을 짝사랑하고 있습니다. 짝사랑을 하게 된 이유는 아주 사소한 옆자리에 앉았다거나 대화를 나눴다는 둥 사소한 것들입니다. 게다가 서 선생은 유부남에 그들이 근무하는 학교에 다니는 다 큰 딸까지 있지만 미숙은 서 선생과의 불륜을 꿈꿉니다.
그러던 중 새로 온 미녀교사 유리가 나타납니다. 그녀는 예쁜 외모 때문에 무슨 일을 하던, 잘하건 못하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유리가 자신의 학교에서의 자신의 자리도 밀어내고 서 선생과도 친해진 듯 보이자 미숙은 둘을 떼어놓을 계획을 짭니다.
제가 봐도 유리는 얄미운 캐릭터이긴 했습니다. 사회생활하다 보면 종종 만나게 되는,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다른 인물들의 자격지심을 건드리고 성격도 해맑아 대놓고 미워할 수도 없는 그러한 캐릭터인 것 같습니다.
미숙은 모난 성격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서 선생의 딸 종희를 포섭해 유리를 제거할 작전을 짭니다. 종희 또한 유리를 미워하고 있어 미숙과 손을 잡고 유리 제거 작전을 펼치는 동시에 엄마와 아빠의 이혼을 막기 위한 공연도 미숙과 함께 준비합니다. 미숙과 종희는 함께 남들이 알면 웃을 여러 작전들을 진지하게 실행에 옮기면서 그들만의 우정을 쌓아갑니다.
결국 미숙이 했던 모든 황당한 작전들이 들키게 되고 사람들은 그들을 손가락질하지만 준비한 공연을 무사히 끝내고 둘은 진정한 친구가 됩니다. 마지막 장면에 미숙이 자기 자신에게 환하게 웃어 보이며 "네가 참 마음에 든다"라고 하는 장면이 기억이 남았고 뭉클하기까지 했습니다.
원래 불공평한 세상에서 나를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
영화에서 미숙의 대사처럼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고 평균 혹은 평균 이하인 사람들은 늘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럴수록 뒤처지는 기분만 느낍니다. 그런 세상에서 선택지는 별로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세상 탓을 하며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기, 혹은 나라도 나를 응원해주기.
세상에서 마이너의 입장인 미숙과 종희는 세상에서 늘 차별받는 존재지만 꿋꿋이 주눅 들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인물이라서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미숙의 학창 시절 사진이 보여주듯 미숙은 세상이 자기를 아무리 뒤로 배제시키고 봐주지 않더라고 끝까지 자신의 존재를 봐달라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자기 자신에게 진심 어린 애정과 응원을 해줍니다.
감독과 배우 이야기
주연을 맡은 공효진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정말 못생겨 보였습니다. 실제로 주변에 있다면 역대급 비호감 캐릭터였을 양미숙이 영화를 보면 볼수록 어딘가 이상하게 귀엽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되는 것은 공효진 배우가 연기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유리를 맡은 황우슬혜 배우는 왠지 실제로도 웃긴 사람일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저의 웃음폭탄이었습니다. 종희 역할을 맡은 서우 배우의 연기도 전체적으로 좋았습니다.
이경미 감독의 영화를 챙겨볼 정도로 팬은 아니지만 '미쓰홍당무'와 '비밀은 없다' 두 작품들은 주변인들에게 재미있다고 추천하는 영화들입니다.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독창적이라 영화에도 그것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이 깜짝 출연까지 해서 웃기고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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