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2012년 개봉한 스릴러 영화로 우리나라에서는 설국열차로 익숙한 틸다 스윈튼 배우가 주연 에바 역을 맡아 연기한 작품입니다.
스릴러 장르이긴 하지만 스릴러의 긴장감에서 오는 재미를 느끼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저에게는 드라마 혹은 다큐멘터리 장르처럼 느껴진 영화입니다. 범죄를 일으킨 아들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보여주는 내용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같은 제목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인데 마치 실존의 누군가가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듯 바탕으로 한 듯 생생하고 깊이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두 번 본 작품인데 첫 번째 개봉 얼마 후에 보았을 때는 저에게 자녀가 없을 때라서 잘 만든 스릴러 영화라는 느낌만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케빈에 대하여'를 두 번째 보았을 때에는 알 수 없는 감정 때문에 눈물이 멈추지 않을 정도로 여운도 컸고 슬픈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었습니다. 아마 저와 같이 자녀의 유무에 따라 이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케빈과 에바
케빈은 16살 생일 직전 자신의 생일선물로 받은 화살로 아버지와 여동생, 학교 친구들을 모두 쏘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영화는 이 일이 생기기 전 태어나서부터 그때까지 케빈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케빈은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당황스럽고 지치게 합니다. 에바는 갑자기 태어난 케빈과 엄마가 된 자신이 어색하고 당황스럽습니다. 에바는 아이에게 해줘야 할 모든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고 케빈은 에바의 뜻대로 행동해주지 않습니다. 에바는 물리적으로 아이에게 해줘야 할 것들은 다 해주지만 정작 중요한 정서적 교감은 없어 보입니다. 3세 이전에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정서적 교감이라는데 이것이 결핍된 채로 케빈은 자라 가고 점점 엄마에게 반항심을 보입니다. 그러다 동생이 태어나고 케빈은 점점 더 교묘하게 에바와 동생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에바는 그런 케빈이 두려워지고 케빈의 문제로 남편과도 다투다가 이혼을 결심합니다. 에바와 남편은 케빈의 16살 생일이 지나면 이혼하기로 하고 남편은 케빈을, 에바는 동생인 실리아를 데려가 따로 살기로 합니다. 그것을 들은 케빈은 16살 생일이 되기 전 범행을 저지릅니다.
사랑받고 싶었지만 사랑받지 못한 아이, 사랑하고 싶었지만 사랑하지 못한 엄마
다시 본 '케빈에 대하여'는 얼마 전 읽은 조예 스테이지의 소설 '나의 아가, 나의 악마'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저의 생각이지만 아마 조예 스테이지도 '케빈에 대하여'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도 부모이지만 아이가 잘못된 길을 갈 때에 부모는 자신의 양육과정을 돌아보게 됩니다. 양육과정에서 혹시 자신이 잘못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나쁜 유전자를 물려줬을까 하는 생각들입니다.
한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아이에게 정신이나 성격장애가 생겼을 경우 설사 그것이 뇌의 선천적 결함 때문에 생겼더라도 보통의 부모들은 자신과 자신의 양육방식에서 꼭 이유를 찾으려 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2세인 자신의 아이는 완전무결하고 순수한 존재여야 하고 나쁜 것은 나의 탓일 때에 오히려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에바도 케빈을 보며 여느 부모와 같이 자신의 잘못을 찾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케빈이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과 '에바가 아들인 케빈을 완전한 사랑을 주지 못한 것' 중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원인일까를 생각하게 합니다. 저 또한 한참을 생각하다 답을 찾지 못하고 그냥 그것 둘은 톱니바퀴처럼 계속 맞물려가 결국 파국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악마로 태어나는 아기는 없다'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출산 후 양육을 시작하는 시기에 하였던 에바의 행동들이 케빈에게 무언가를 촉발시켰고 폭력성을 가지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양육을 하였더라도 아기의 성향에 따라 결과는 다양하게 달라지겠지만 케빈의 경우는 최악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케빈은 항상 에바의 사랑을 갈구했으나 그 사랑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에바가 케빈과의 관계를 바로잡으려 한 것은 케빈이 이상행동을 시작한 후 너무 늦은 때였습니다.
부모 또한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신경 쓰고 평생을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사소한 행동들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어떻게 평생을 좌지우지할지 모른다는 점이 양육에서 가장 부모를 짓누르는 부담감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 막연한 두려움을 눈으로 보여준 것이 영화 '케빈에 대하여'였습니다. 스릴러 영화이지만 부모로서 저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생각하게 해 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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